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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인,구직게시판
| 등록사진 없음 |
이 름 |
정갑용[남성] |
생년월일 |
1957년생 |
| 전 화 |
016-747-9394 |
핸드폰 |
016-747-9394 |
| E-mail |
cnilter@yahoo.co.kr
|
| 홈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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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 소 |
서울 |
| 희망연봉 |
2600만원~2800만원 |
지원형태 |
정규직 |
| 희망지역 |
서울 |
| 지원분야 |
사무관리직 |
| 입학년도 |
졸업년도 |
학교명 |
학과 |
구분 |
소재지 |
| 1977 |
1984 |
국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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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서울 |
| 0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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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0 |
| 자기소개서 |
자 기 소 개 서
* 유의 사항 : 다음의(청호 관련, 웅진 관련, 일부 보험 관련, 네트워크 마켓팅 관련 등) 회사는 연락을 삼가해 주시기 바랍니다.
1. 성장 및 학력
저는 농업(農業)에 종사하고 계시는 부친(父親) 정태수(鄭泰壽)의 장남(長男)으로 충북 충주(忠州)시(舊: 中原郡)에서 태어났으며, 충북 괴산군(槐山郡)에 소재하고 있는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졸업하고, 부친의 뜻에 따라 충주시에 있는 충주상업고등학교(忠州商業高等學校)에 입학(入學)하여 상업에 대한 기본적(基本的)인 내용을 열심히 배웠습니다. 특히, 영어(英語), 주산(珠算), 부기(簿記)에 중점(重點)을 두었고, 경영대요(經營大要), 세무회계(稅務會計), 상업계산(商業計算)을 배우면서 상업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부친을 돕다가 단기 병역(兵役)을 마쳤고 다시 부친을 돕던 중 상업(商業) 및 경영(經營)에 관련된 지식을 쌓아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매우 늦은 편이지만, 1981년 서울에 있는 국민대학교(國民大學校) 회계학과(會計學科)에 입학(入學)하였습니다. 성격이 침착하고 사려 깊고 차분하여 교우관계도 원만(圓滿)하고 돈독(敦篤)하였습니다. 또한, 스타디 그룹(Study Group)에도 적극 참여했고, 회계학(會計學), 재무관리(財務管理), 마케팅관리(Marketing Management), 생산 관리(生産管理) 등을 열심히 배우면서, 보람있는 대학 생활을 하고자 많이 노력했고, 졸업 당시의 성적(成績)은 중간 이상에 속했습니다.
2. 경력사항
- 증권경력-
1). 대학을 졸업하고 1985년 4월 LG증권에 입사하여 1989년 7월 그만둘 때까지 본, 지점(本,支店)에 두루 근무하면서, 서무(庶務), 경리(經理), 증권저축(證券貯蓄), 수탁업무(受託業務) 등을 두루 맡았습니다. 특히, 3년 동안 감사실(監査室)에 근무하면서 가장 중요한 경력을 쌓았습니다. 업무수행에 필요한 자체교육용 업무편람(業務便覽)을 제작하기도 했고, 그 지식을 바탕으로 각 지점의 업무(業務)를 지도(指導)하고, 고객과의 분쟁해결(解決)에 주력하는 등 사고예방(事故豫防)에 만전을 기하기도 했습니다. 영업부(營業部)에 근무할 때는 700여 종목, 2천만 주에 달하는 주식관리를 한치의 오차 없이 해내었으며, 공모주자동입고(公募株自動入庫) 업무처리를 업계최초로 실시했습니다. 업무에 관한 한 항상 업계 최고(業界 最高)를 지향(指向)한다는 자세로 임했고, 전산실과 협의하여 저축업무(貯蓄業務)의 전산화(電算化)에 두각(頭角)을 나타냈습니다.
2). 그러던 중 1989년 7월 고려증권(高麗證券)으로 옮기게 되었고, 관리업무(管理業務)를 맡으면서 영업(營業)을 담당했습니다. 국내외 경기가 하락 일변도인데다가 불경기 상태에서 증권계에 근무하고 있는 것이 얼마나 참담한 일인가를 피부로 처절하게 느꼈습니다. 결국, 증권시장(證券市場)의 어두운 전망과 현실에 손을 들었고, 1996년 봄, 십 수년을 몸담았고 꿈이 서렸던 증권계(證券界)를 떠났습니다.
- 유통경력 -
3). 증권계(證券界)를 떠난 후 (주)삼천리(三千里)의 유통부분인 삼천리 마트(Mart)에서 효율적(效率的)인 재고관리(在庫 管理)를 해보라는 지인(知人)의 의뢰(依賴)가 있어 그곳에서 10개월간 일하기도 했습니다. 창고관리(倉庫管理) 및 행정관리(行政 管理), 분기(分期)별 재고조사(在庫調査), 이 백 군데 가까운 거래처의 납품물건에 대한 검수(檢受) 및 출납(出納)등을 맡았습니다.
- 학교 행정 경력 -
4). 1997년 초, 인천 혜광학교장이 그 학교의 서무과장(序務課長)으로 일하도록 조치하여 그곳에서 1년간 일했습니다. 예산(豫算)의 편성(編成), 집행(執行), 결산(決算)에 따른 관련 장부(帳簿) 및 증빙 자료(證憑 資料)의 정리(整理), 교직원(敎職員) 인사업무(人事業務), 법인간사업무(法人幹事業務), 학교시설물관리(學校施設物管理)등을 맡아보다가, 거리가 멀고, 학교장(學校長)이 퇴진(退陣)함에 따라 그만두게 되어 되었습니다.
- 일반행정경력 -
5). 수도직물부 상우회(首都織物部 商友會)에 들어가서는 수작업관리비고지서(手作業管理費告知書) 발부업무를 전산화(電算化)했고, 경리업무(經理業務)와 서무업무(庶務業務)를 병행하여 수행했습니다. 또한, 소속 거래처를 도와 홍보문안(弘報文案) 작성, 거래처관리(去來處 管理) 등 고객관리(顧客管理)를 지원했습니다. 그리고, 실무(實務)에 적용하던 전산지식(電算知識)을 향상시키고자 컴퓨터학원에 등록하여 3개월 과정을 수료하기도 했습니다.
- 출간 경력 -
6). 1999년 5월 장편소설(長篇小說) 「 정호신전(鄭護神傳) 」을 출간(出刊)했습니다. 21세기에 등장했으면 하는 한국인(韓國人)의 모습을 가상인물(假想人物)로 그렸고, 특징(特徵)은 혹독한 시련을 겪을수록 완성도가 더해 가는 대장간적 인생관을 강조했고, 선과 악은 한쪽이 절대우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죽이고 잡아먹는 카오스(chaos)적 인간관계임을 극적으로 설정했습니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 선보인 처녀작(處女作)이었지만, 지도교수의 격려 한 마디가 소설창작(小說創作) 자체를 내 인생과는 먼 것으로부터, 가깝게 당겨버린 기폭제(起爆劑)가 되었던 것입니다.
- 기업홍보경력 -
7). 소설출간(小說出刊)이 계기가 되고 정부가 제3시장(第3市場)을 열면서 진입준비를 하고 있던 Korea 2000에 들어갔습니다. 그곳에서 형질변경업무(形質變更業務)를 소재로 서적집필(書籍執筆) 준비도 하고 홍보문안(弘報文案) 작성도 했습니다. 대표이사의 연재칼럼 문안을 작성하거나 돕는 등 기업 홍보(IR) 문안 작성을 도왔습니다. 그러던 중 급여가 생활비를 충족하기에는 미흡하여 그만두었습니다.
- 재무회계관리 및 주식관리 경력 -
8). 현재, 제3시장에 진입해있는 주)골든 존은 벤처기업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주식관리(株式管理)와 재무관리(財務管理) 부문을 담당했습니다. 개인기업으로 있다가 거래 세무사에 의해 양수양도(讓受讓渡)에 의한 법인 전환이 끝난 지 오래되었음에도 회사내부업무는 단식부기(單式簿記) 위주의 재무경리(財務經理)시스템에 의해 움직이고 있어, 1년간을 소급하여 복식부기(複式簿記)업무 체계로 바꾸었습니다. 아울러, 급여의 체계적 지급업무, 4대 사회보장보험취급업무(社會保障保險取扱業務) 등을 정착시켰습니다. 주식관리업무(株式管理業務)도 젊은 시절의 역량을 되살려 증권예탁원(證券預託院), 그리고 주식예탁과 직접 관련이 있는 거래증권사(去來證券社)와 협조하여 매끄럽게 처리했고, 비용절감(費用節減)에도 많이 이바지했습니다.
9). (주)밀레정보통신에서는 다양한 경력을 총정리(總整理)한 시기로 보고 있습니다. (주)골든 존에서와 마찬가지로 급여지급업무(給與支給業務, 4대 사회보장업무(社會保障業務)의 정착, 부가가치세(附加價値稅) 및 갑근세(甲勤稅) 등 납부 및 신고업무, 전표(傳票) 발생 및 관련 장부(帳簿)의 마감 정리, 회계프로그램의 설치 사용을 정착시켰습니다. 그리고, 작년도 결산을 거래세무사와 공동으로 마무리하여 회계감사(會計監査)시 적정(適正)을 판정 받았습니다. 또한, 작년 상반기에는 상반기결산(上半期決算)을 마무리하고 반기검토보고서(半期檢討報告書)를 제출하여 지난 8월, 증권업협회(證券業協會)의 심사를 거쳐 제3시장에 진입시켰습니다. 또한, 기술보증보험(技術保證保險)에 의한 융자(融資), 주주총회(株主總會), 이사회업무(理事會業務) 등을 주관해왔습니다. 증자(增資) 및 감자(減資)에 따른 공증(公證), 등기(登記)도 법무사에 의뢰하는 일없이 자력으로 처리해 왔습니다.
그럼에도, 또, 사주(社主)의 각별한 사랑에도 불구하고 회사가 지방으로 이전됨에 따라 출퇴근에 5시간이나 6시간을 소비할 수가 없어 전직(轉職)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제는 주식관련업무(株式關聯業務)나 회계처리업무(會計處理業務)는 컨설팅을 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리모델링회사(인테리어 등)에서의 재무, 경리 경력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 결 어 -
다양한 업무 경력을 쌓으면서 3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1). 스스로 크리너(Cleaner : 청소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가는 곳마다 정리해야 할 일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 프로 >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주어진 시간 내에 빨리, 완벽하게 끝내고 합당한 대가를 요구하는 것이 프로라고 생각합니다. 한 직장에서 시간개념(時間槪念)도 없이, 자기계발(自己啓發)은 등한히 하면서, 또, 스스로가 생산성(生産性)이 있는지 모르면서, 오래도록 근무하려고 드는 것은 시대 흐름의 문외한이라고 생각합니다.
2). 스스로를 프로 또는 크리너라고 생각하면서 일하다가 보니 일의 흐름과 절차를 구체적으로 기록하게 되었습니다. 금년 초부터 처음에는 일기를 쓰듯이 가볍게 출발했으나, 지금은 돈주고도 살 수 없는 나만의 업무편람(業務便覽)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벌써 2~3백 쪽에 이르고 있어, 오래지 않아 내가 만든 업무편람이 시중 서점에 나올지도 모릅니다.
3). 증권계에서 방향도 정하지 않고 나왔다가, 몇 년을 보내면서 다양한 일을 하다보니, 이제는 무슨 일이든 최고경영자(CEO)라는 생각으로 일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목표도 그렇게 정했습니다.
3. 각 오
상기에서 밝힌 저의 이력과 경력이 필요하여, 함께 힘을 모을 기회와 여건이 된다면, 다년간의 증권업무경력, 제3시장업무취급경력, 축적된 인맥, 경리, 회계, 재무처리능력, 다양한 사회경험을 토대로 열심히 일해보고자 합니다.
특히, 투명한 경영 가운데서 어디서든 우뚝 서는 회사 만들기에 일조 했으면 합니다.
이상으로 자기소개를 마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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